칼럼같은 이야기

체육계 미투 관련 중앙일보 시론

성문정 2019. 3. 11. 16:56


성문정(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

 

지난 18일 유명 선수의 성폭행 관련 폭로가 있었던 후 20여일이 지났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체육계 미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부처와 국회,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와 의회, 체육회, 사회단체에서 서로가 문제 해결자 인양 정제되지 않는 대책을 내놓기에 바쁘다. 물론 체육계 성폭력 해소를 위해 모두가 앞장 서겠다니 좋다. 그러나 물들어올 때 노 젓듯 한 숟갈 얹혀가는 느낌이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모 유명선수의 용기있는 폭로가 있던 다음날 문체부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가해자 처벌 강화와, 민간주도 특별조사 실시, 스포츠윤리센타 설립과 더불어 성폭행 장소가 국가대표 훈련장이었기에 선수촌 합숙훈련 개선 의지 등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성난 민심을 삭히고 정부의 의지에 신뢰를 보내주기는커녕 오히려 실망과 불신을 더욱 확산시켰다. 나아가 후속대책(1. 16) 발표에서는 문체부는 여론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한체육회장을 국가올림픽위원회의 대표이기도 하기에 IOC규정(올림픽 헌장 276)에 따라 정부는 체육회장 퇴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까지 했다. 대통령께서 총리께서 아니 전 국민이 이 현실을 개탄하고 책임자 처벌과 체육계의 강도 높은 혁신을 요구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미성년 선수 성폭행에 대한 책임을 체육단체 수장이 지고 물러나라는 것이 올림픽 헌장에서 말한 정치적, 법적 압력을 가하지 말란 것이라고 이해하는 국민은 누가 있을까? 그래서 피해당한 선수가족과 국민은 정부에게 또 한번 대 실망을 하고 만다. 역시 가재는 게편인가보다 라고.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사회관계장관회의(1. 25)를 통해 범정부 차원의 체육계 성폭력 근절대책 수립방안을 또 다시 내놓았다. 지난 9일 이후 내놓은 각종 대책들만도 수십 건이다. 대책이 없어서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을까? 어안이 벙벙하다.

범정부 대책에서도 밝혔듯이 스포츠맨쉽이 강조되는 체육계에서 성폭력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그 동안 한국 체육이 지향해온 성적만능주의, 우수 선수만 집중 육성하는 엘리트체육 우선주의가 원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권유린 현장은 어린 선수에겐 너무나 가혹했고,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메달에만 환호했던 현실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국제대회의 우수 성적을 요구하면서 현재와 같은 구조를 묵인한 책임이 크므로 근본적인 체육시스템 개혁에 나서겠다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한국체육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말하며 이슈를 분산시키기 보다 우선 먼저 제2의 조재범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폭력 방지에 초점을 두고 돌이킬 수 없는 개선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 원인들이 윤리문제면 윤리성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하고, 폐쇄적 훈련체제가 문제면 폐쇄훈련체제를 개방하면 된다. 처벌이 약해서라면 정부발표대로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 나아가 특기생제도가 문제라면 이를 개선하면 된다. 그래서 책임질 자 책임지게 하는 것이 지금 당장 정부의 역할이다.

학벌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특기생제도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지도자가 선수와 학부모를 자신에게 복종하게 하는 나쁜 제도로 악용되고 있음이 수차례 밝혀졌다. 폭력을 당해도 대학입학에 필요한 성적을 얻기 위해 지도자에게 복종하고 입을 닫아버렸을 수도 있다. 설령 몇몇 사건처럼 체육경기단체에 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과 온정주의로 조사와 처벌을 쉬쉬하는 이들의 행태를 보고 기댈 곳 하나 없었던 어린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절망과 아픔의 응어리를 가슴에 묻고 끙끙거리며 오로지 1등을 위해 눈물의 훈련을 했을지도 모른다. 피눈물 맺히게 가슴 먹먹한 현실이다.

스포츠는 국위선양의 수단이 아니다.

이제 이 해괴망측한 훈련환경을 뜯어 고쳐야한다. 몇몇 스포츠선진국에서는 체육단체 규정이나 코치강령을 만들어 지도자는 이성선수와 밀실 면담을 절대 금지원칙으로 삼고 있다. 우리도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지도자 선임시 강령에 서명토록하고 위반시 즉시 퇴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폭력 사건을 인지한 선수, 지도자, 체육경기단체 임직원은 반드시 인지신고를 의무화하고 미 신고시 가해자에 준하는 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기에 모두가 나서서 서로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2019년 새해 벽두 모 유명선수의 헌신적 폭로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폭로가 성폭력 없는 대한민국 체육현장으로 완성되길 희망한다. 그것이 피해 당한 선수들의 바람이고, 체육계 미투 완성의 출발점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