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정책 이야기

북한의 국제체육 교류 현황

성문정 2008. 12. 27. 20:06

북한의 국제체육 교류 현황

                                                                                                            

                                                                                                              성문정(체육과학연구원)

1999년의 제7차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경기에서 정성옥이 북한 선수로는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정성옥은 이 대회에서의 우승으로 인해 인민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인민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정성옥의 이러한 우승에 대해 북한은 김정일이 1986년 체육인과의 담화에서 제시한 체육기술의 발전에 관한 지시에서 비롯된 성과로 여겼다.

김정일은 이 담화에서 체육기술의 기본적 발전방향을 우선적으로 인민의 기호와 체질에 맞고 전망이 밝은 종목들의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두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라톤을 비롯한 육상종목과 축구, 탁구, 사격, 권투, 양궁, 체조, 역도 등을 적절한 종목으로 제시했었다.


김정일의 1986년 담화를 보면 국제교류의 의지가 강하게 피력되어 있다.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의 참가를 독려하는 한편, 국제무대에서의 성적에도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에 따라 북한은 자주 국제대회에 참가했고 특히 전통적으로 북한이 강세 종목이었던 마라톤, 체조, 역도, 사격, 탁구와 레슬링, 유도 등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들 종목 중에서도 특히 사격은 경기의 성격상 한국․미국과의 대결의식을 강조할 수 있는 적절한 종목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국제체육교류는 국제대회에 참가하거나 개최하여 타국과의 교류를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북한의 경우는 경제적인 이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내에서 국제적 규모의 공식적 종합대회를 실시한 경우가 거의 없으며, 개최하는 국제대회의 규모도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국가나 제3세계국가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의 국제체육교류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국제대회참가


가. 올림픽대회

우리나라는 지난 1947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결정에 따라 한반도의 유일한 IOC회원국 자격을 획득했다. 따라서 한 국가에 하나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를 인정한다는 IOC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IOC가입은 빈번히 무산되었고 북한의 올림픽 참가 역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북한의 IOC가입은 1957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잠정적으로 인정되었다. 로마올림픽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NOC를 인정하되, 단일팀이 불발되었을 경우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1963년 10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총회는 북한의 NOC자격을 승인하여 북한의 IOC회원 자격이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그리하여 북한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제9회 동계올림픽대회부터 독자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으며, 북한이 본격적으로 올림픽대회를 비롯한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제68차 IOC총회에서 이후의 모든 올림픽경기대회에 북한의 정식국호를 ‘DPRK'로 결정하면서부터였다.


1) 하계올림픽대회

북한이 하계올림픽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72년 독일 뮌헨대회였다. 21개의 경기종목 중 육상, 역도, 여자배구, 권투, 사격, 체조, 양궁, 조정, 유도 등 10개 종목에 65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금메달 1개(사격), 은메달 1개(권투), 동메달 3개(유도․여자배구․레슬링)로 종합순위 22위를 차지했는데, 체조에서는 이송섭이 철봉에서 ‘두바퀴 허공 돌아 360도 방향 바꾸기’ 동작을 해내 국제체조연맹이 이 기술을 ‘이송섭 내리기’로 등록하기도 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대회에는 축구, 육상, 사격, 양궁, 권투, 역도, 유도, 레슬링 등 8개 종목에 선수 61명, 임원 29명 등 90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는 권투에서 금․은메달 각 1개씩 얻는데 그쳤다.

1980년 소련의 모스크바대회에는 역도, 레슬링, 체조, 마라톤, 유도, 양궁, 사격, 권투 등 8개 종목에 걸쳐 선수 57명, 임원 44명 등 101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하지만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고 레슬링과 역도에서 은메달 2개, 역도와 권투에서 동메달 2개만을 획득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대회와 1988년 서울대회에 불참한 북한은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대회에 레슬링, 역도, 권투, 체조, 탁구, 유도, 육상, 사격 등 11개 종목에 사상 최대규모인 선수 65명, 임원 43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금메달 4개(레슬링, 체조, 복싱), 동메달 5개(레슬링, 역도, 복싱, 탁구)를 얻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 대회에는 9개 종목에 24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는데, 이렇듯 적은 규모로 파견한 것은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이른바 애도기간임을 감안한 조치였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출전선수 규모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0년 호주의 시드니대회에는 31명의 선수를 파견했으나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만을 획득하는 등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나타냈다. 특히 확실한 금메달 후보였던 여자역도의 세계신기록 보유자 이성희가 은메달에 그쳤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대회에서는 9개 종목에 75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으며, 은메달 4,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선수 63명을 내보낸 북한은 여자 역도와 여자 체조에서 예상 밖 선전으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최고 성적을 거뒀다.


2) 동계올림픽대회

북한의 첫 동계올림픽대회 참가는 1964년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대회였다. 이 대회에 선수 17명, 임원 22명 등 39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여 한필화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72년의 삿포로대회, 1984년의 사라예보대회, 1988년의 캘거리대회에 참가했으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이 가운데 1972의 삿포로대회에서는 한필화가 남매 상봉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실감케 했다.

1980년의 레이크플레이드대회는 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으나 북한은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고 대표단만 보냈다. 1992년의 프랑스 알베르대회에서는 숏트랙 500m에서 황옥실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대회는 개최 전 발생한 미국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불참하였으며 2006년에는 오랜만에 동계올림픽에 참여하여 우리와 공동입장을 할 수 있었으나 성적은 메달획득에는 실패하였다.


나. 아시아경기대회


1) 하계아시아대회

1972년 뮌헨올림픽대회 이후 북한은 아시아경기연맹(AGF)에도 가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1974년 제7회 아시안게임 개최국인 이란과의 접촉을 강화하여 1974년 3월 테헤란 아시아경기연맹 대표자회의에서 북한의 아시아경기연맹 가입이 승인되었다.

북한은 1974년 8월 30일 아시아역도연맹 가입을 시작으로 그 해 9월 한달 동안에 무려 8개 종목의 산하 경기연맹에 가입하고 1974년 9월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 처음 참가를 시작으로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94년 대회를 제외한 대회에 전대회에 참가해 왔다.

1974년 테헤란대회에는 14개 종목에 2백32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여 금메달 15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7개로 종합순위에서 한국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기간 중 북한은 AGF 총회에서 신입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집행위원국에 피선되는 등 스포츠외교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1978년 방콕대회에는 13개 종목에 2백24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금 15개, 은 13개, 동 15개로 한국에 이은 종합 4위를 차지했다. 1982년 인도 뉴델리대회에서는 금 17개, 은 19개, 동 20개로 한국의 뒤를 이었다. 1986년 서울대회를 정치적 이유로 불참했던 북한은 1990년 북경대회에서 금 12개, 은 31개, 동 39개로 종합성적 4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남북 공동응원을 펼쳐 남북화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4년 히로시마대회는 김일성에 대한 애도기간임을 이유로 불참했으나 1998년 방콕대회에는 3백14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 대회에서는 20여 개의 종목에 출전하여 금 7개, 은 14개, 동 12개를 확보하여 종합 8위에 그쳤다.

북한이 참가한 역대 아시아경기대회 중 가장 의미 있는 대회는 2002년 9월부터 진행된 부산대회였다. 남한이 개최하는 국제경기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는 단순한 의미뿐만 아니라 작게는 남북체육교류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크게는 남과 북이 민족공동체로서 하나됨을 확인한 대회라는 의미가 더욱 큰 대회였다.

사실 남과 북의 스포츠교류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이나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출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동시입장 등은 외국에서 이뤄진 일이며, 1990년 남북통일축구, 1999년 통일농구대회는 단일종목의 이벤트 성향이 강한 교류였다. 이에 비해 북한의 부산대회 참가는 그 자체로 기존 제한적 공간에서 소수 인원으로 이루어지던 남북체육교류의 질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인공기를 둘러싼 논쟁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경기장은 물론이고 부산 시내 곳곳에서 공동응원과 각종 행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포애를 느낌으로써 민족동질성을 확인했다.

2006년 도하대회에서는 북한이 금 6, 은 9, 동 16개로 16위를 달성했다.


2) 동계아시아대회

종목 특성상, 동계스포츠는 아시아에서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동계아시아경기대회는 1986년에 와서야 일본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전통적으로 강세 종목이었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여자 1000m경기에서는 0.4초 차이로 한춘옥이 1위를 놓쳤다. 하지만 피겨 듀엣부문에서 남혜영(15세)과 김혁(11세)이 예상외로 1위를 차지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첫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 1개, 은 2개, 동 5개를 얻었으나 1990년 제2회 대회에서는 빙상에서만 은 1개, 동 1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제3회 대회는 북한에서 유치했으나 대회를 반납하여 무산되었다. 이후 대회는 1999년 강원도에서 개최했으나 북한은 참가하지 않았다. 2003년 일본의 아오모리에서 개최된 동계대회에서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한 개씩 획득하였으며, 2007년 중국 창춘대회에 북한은 선수 임원 99명을 파견했으나 단 한 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 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북한의 유니버시아드대회 참가는 1970년 핀란드 로비니에미 동계대회가 처음이다. 이 대회에는 19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으나 한필화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하나씩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이후 유니버시아드대회는 한 동안 참가하지 않았다. 1983년 캐나다 레드먼튼 하계대회에 3명의 대표만이 참가했을 뿐이다. 북한이 다시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것은 1985년 일본 고베 하계대회였다. 이 대회에서는 1백39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얻어 종합성적 12위의 한국보다 앞선 9위의 성적을 차지했다.

1987년 유고 자그레브 하계대회에는 축구, 육상, 농구, 배구, 체조, 카누, 조정 등 7개 종목에 63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 대회에서는 축구와 여자체조에서 동메달 2개를 얻는 데 그쳤다. 1989년 독일 뒤스부르크 하계대회에 불참한 북한은 1991년 영국 세필드 하계대회에 92명의 선수단으로 체조, 다이빙, 축구, 여자농구, 육상 등 5개 종목에 참가하여 금 11개, 은 3개, 동 5개의 성적을 거두고 종합순위 5위에 올랐다.

동계대회에는 1970년 로비니에미대회 참가 이후 1987년 체코 스트르브스키 플레스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는 북한은 아이스하키, 스키, 피겨스케이팅 등 3개 종목에 32명의 선수를 파견했으나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1989년 불가리아 소피아대회에는 피겨스케이팅, 스키 등 2개 종목에 45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은 1개, 동 1개를 획득했다. 1991년 일본 삿포로대회에는 아이스하키, 피겨, 스키 등 5개 종목에 82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여 금 4개, 은 1개, 동 3개를 얻어 종합성적 4위에 올랐다. 1993년 폴란드 자코뱅 동계대회에는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숏트랙 등 3개 종목에 24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은 2개, 동 3개를 획득했다.

2003년 대구대회에는 여자축구와 유도, 체조 등에서 정상에 올라 금 3, 은 7, 동메달 3개로 종합 9위를 달성했으나, 2005년 터키대회에서는 금 1, 은 3, 동 2개로 24위, 2007년 방콕대회에서는 금 2, 은 1, 동 4개로 21위에 머물렀다.


라. 세계선수권대회

북한은 1950년 중반에 종목별 국제경기연맹에 가입했으나, 국제대회 참가는 1960년대까지는 주로 사회주의권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집중되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 위주로 외교관계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56년 8월 30일부터 9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세계배구선수권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남자팀은 24개 참가국 가운데 18위, 여자팀은 17개 참가국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특히 여자팀은 미국팀을 3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승리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후 1963년 루마니아 국제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남자단체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1969년의 쿠바 국제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도 1위를 했다. 같은 해 열린 모스크바 국제체조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6개,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동계종목 중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강세를 보여 1965년 핀란드의 세계여자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종합 2위를, 1966년 노르웨이대회에서는 김송순이 1500m 1위, 1000m 2위, 3000m 3위를 바탕으로 종합성적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 성적은 여자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이었다. 1970년 베를린의 세계스피드스케티팅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의 성적을 거두었다.

북한이 서구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 본격적으로 참가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72년 뮌헨의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박동근이 용상 52kg급에서 1위를 차지했고, 1973년 프랑스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는 김향민이 30m 복식경기에서 2위, 장순영이 3위를 차지했다. 이어 1975년 스위스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 단체전 2위, 그리고 한순희가 60m 복식경기에서 2위를 한 것을 비롯하여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5년 제33회 인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단식에서 박영순이 1위를 차지했는데, 박영순은 1977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단식과 복식에서 1위를 하는 등 모두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의 성적을 올렸다. 레슬링에서는 1983년 소련 끼예프에서 열린 제22회 레슬링선수권대회의 48kg급 자유형에서 1위를 한 것을 비롯하여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북한은 체조선수권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미 1972년 뮌헨 올림픽대회 철봉종목에서 이송섭이 보여준 기술이 ‘이송섭 내리기’로 국제체조연맹에 등록된 것을 비롯하여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뛰어난 기량으로 국제체조연맹에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이 등록된 선수들이 많다. 1981년 모스크바 세계체조선수권대회에서는 이철헌이 안마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여 국제체조연맹은 그의 기술을 ‘이철헌 동작’으로 등록했으며, 여자 선수로는 김광숙이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 이단평행봉에서 새로운 동작을 선보여 ‘김광숙 동작’으로 등록되었다. 김광숙은 1991년 대회에서도 10점 만점을 받기도 했다. 배길수는 1992년과 1993년, 1996년의 세계체조선수권대회 안마종목에서 모두 1위를 하여 ‘안마왕’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체조종목은 1990년대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999년의 국제대회에서는 올림픽출전권을 따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요컨대, 북한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찍부터 좋은 성적을 거둔 종목을 주로 스피드스케이팅, 역도, 레슬링, 탁구, 체조 등이었다. 이들 종목을 최근까지도 북한의 강세종목으로, 특히 역도에서는 이성희가 여자 선수로서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들 종목 외에 최근 좋은 성적을 올린 종목은 육상과 유도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정성옥이 1999년 제7차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 1위는 차지하여 북한은 자긍심과 자존심을 살려준 획기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도에서는 계순희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대회에서 일본의 간판스타 타무라 료코를 누르고 금메달을 딴 뒤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 200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위에 이어 2003년, 2005년 2007년에도 각각 1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2. 국제대회 개최

지금까지 북한에서 개최된 국제대회는 단일종목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공식적인 종합대회는 실시된 바가 없다. 또 개최하는 국제대회의 규모도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국가나 제3세계국가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서 북한과 이념적으로 공감하는 나라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 최근에 와서는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중립국 또는 서방국가들의 선수를 초청하여 친선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1980년대에 들어와 예술 체조(리듬체조), 마라톤, 여자배구, 탁구, 권투, 유도, 사격, 레슬링 등 종목에 대하여 국제 초청 경기대회를 창설, 연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북한에서 개최는 주요 국제대회로는 ‘만경대상국제마라톤대회’가 가장 대표적이며, 역사적으로도 오래되었고 비교적 많은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만경대상국제마라톤대회’는 1981년 4월 김일성의 생일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창설된 대회로서 각국과의 스포츠 교류를 통한 친선 도모 및 육상 경기 종목의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1981년 제1차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으나, 1993년부터 7년간 중단되었다가 2000년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2008년 4월 16일에 열린 ‘제21차 만경대상국제마라톤대회’에는 중국, 루마니아, 노르웨이, 케냐, 탄자니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가 참가하였다. 경기방식은 남녀부분으로 나뉘었고, 김일성경기장을 출발해 개선문, 혁신거리, 영웅거리, 천리마거리, 낙원거리, 광복거리, 반환점인 청년영웅도로, 김일성경기장으로 골인하는 코스로 진행되었다. 창설 이래 해마다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 중심의 6-8개국이 참가하여 왔으나 경기기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2008년 대회에는 남한의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이 초청받아 참가하기도 했다.

1979년 6월 창설한 ‘국제친선예술체조경기대회’는 각국과의 예술체조를 통한 친선 도모 및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 경기대회로서 연례적인 초청 경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몽고, 불가리아 등 친북 성향의 국가들이 참가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2진 선수단을 파견하여 북한이 종합 우승을 해마다 독점해 오고 있다.

1992년 2월부터 개최된 ‘백두산상 국제휘거축전(국제피겨축전, 국제피겨대회)’은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행사의 하나로 시작하여 매년 열리고 있다. 2000년 2월 12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된 ‘제9차 백두산상 국제휘거축전’은 세계선수권대회 경기규칙에 준해 남녀 개인경기(싱글), 쌍경기(페어), 빙상무용경기(아이스댄싱) 등 4개 종목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등지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다음해인 ‘제10차 백두산상 국제휘겨축전’에는 벨라루씨, 영국, 우크라이나, 중국, 체스꼬, 프랑스의 이름 있는 피겨선수들과 북한 피겨선수들이 참가하였다.

1999년 3월 20~25일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있는 빙상관에서 열린 ‘아시아, 오세안주청소년빙상호케이선수권대회(2조)’ 개막식이 열렸다. 이 대회는 제16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주니어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 B풀경기로 북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가 각각 1, 2, 3위를 차지했고 중국 선수단은 경기도덕상컵(페어플레이상)을 받았다. 25일 빙상관에서 열린 폐회식에서는 요한 토비다 국제 아이스하키연맹(IIHF)대표가 폐회사를 했으며, 양만길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이동호 북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등 북한 관계자들과 평양 시민들이 참석했다.

‘평양국제탁구초청경기대회’는 1981년 창설되어 1992년(제12차)까지 해마다 열렸으나 그 이후 중지됐다가 1999년 ‘제13차 평양국제탁구초청경기대회’가 7년 만에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1999년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평양시 만경대구역 청춘거리에 있는 탁구경기관에서 열렸으며, 주최국인 북한을 비롯하여 몽고, 이란, 인도, 일본, 중국이 참가했다. 중국과 북한선수가 각각 남녀 개인전 1위를, 여자복식, 남자복식, 혼성복식에서는 모두 북한선수들이 1위를 차지했으며, 단체경기에서는 중국(男)과 북한(女)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0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5일간 ‘제14차 평양국제탁구초청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창설 초기에는 러시아, 중국 등 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가하여 왔으나, 1987년 이후부터는 비동맹권의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이 참가하고 있다.

‘평양국제권투대회’는 1981년 외국과의 스포츠 교류를 통한 친선 도모 및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창설한 대회이다. 창설 이래 러시아, 중국, 루마니아, 동독, 체코 등 5-6개국이 고정적으로 참가하여 왔다.

2004년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제1차 국제무도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태권도경기관, 가라테경기관 등 북한의 체육선수촌인 평양시 청춘거리의 8개 장소에서 열리는 국제무도대회는 경기종목은 태권도, 가라데, 우슈, 킥복싱, 바둑, 씨름이며, 시범종목은 태권도, 우슈, 가라데, 아이끼도, 쥬지쯔, 바실라, 기타 개별적 나라에서 자기 나라 전통무도의 시범출연을 할수 있다고 밝혔다. 이 대회에는 북한, 중국, 일본, 몽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디아, 네팔, 뛰르끼예, 끼르끼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끼스탄, 인도네시아, 로씨야, 벌가리아, 체스코, 슬로벤스꼬, 우크라이나, 프랑스, 에스파이나, 아일랜드, 몰도바,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카나다, 콜롬비아, 뻬루, 칠레, 꾸바, 그레네이더,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50여개 나라에서 600여명의 무도인들이 참가하였다.

‘평양컵국제축구대회’는 1990년 창설한 대회로서 상금(제)를 실시하는 것이 특이하다. 우승국에는 2만 달러, 준우승 팀에는 1만 달러, 3위에게는 5천 달러를 지급했다.

이 밖에 북한에 개최하고 있는 국제대회에는 ‘평양 국제 여자배구대회’가 1981년 11월에 창설되었고, ‘백두산상 국제유도대회’는 1983년 6월에 창설되었다. ‘국제사격경기대회’는 1984년 10월에 창설되었으며, ‘국제속도빙상경기대회’는 1988년 12월에 창설되었다. 또한 ‘국제역도경기대회’는 1990년 10월에 창설되었고, ‘국제체조경기대회’는 1991년 7월에 창설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회가 지속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의 경제적 상항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