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베이징 올림픽과 남북체육교류
성문정(체육과학연구원)
1. 들어가며
2008년 1월 8일 북한 김장산 체육지도위원회 부위원장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2008년 북한 체육계의 과제로 올림픽 메달 획득과 남북 체육교류 활성화를 꼽았다.
김부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올해의 사업 중심은 올림픽경기에서 하나라도 더 많은 메달을 쟁취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우선 올해 상반기 권투, 레슬링, 유술(유도), 탁구, 물에 뛰어들기(다이빙), 수중발레, 조정 등 종목별로 올림픽 출전 자격권을 따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부위원장은 또 "작년 10.4선언의 발표를 계기로 북남이 체육분야에서도 교류와 협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고 남북 체육교류 활성화를 북한 체육계의 올해 과제중 하나로 들고 "우리는 10.4선언의 정신에 맞게 북남 체육교류를 적극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태영 합참의장의 청문회 답변 중 '선제타격' 즉,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문제 삼으면서 북한 군부가 "남한의 군부 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 당국간 대화접촉도 군부가 차단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대북정책에 반발하면서 남북간 체육 관련 교류도 주춤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북한올림픽위원회가 지난 4월 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6차 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ANOC) 총회에 나란히 참석했지만 8일 현재 베이징(北京) 올림픽 남북단일팀 및 공동응원단 구성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으며, 김정길 KOC위원장은 ANOC 총회기간 박학선 신임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양자 회동을 갖자고 2차례에 걸쳐 요청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경의선 철도를 이용한 올림픽 공동응원단 파견은 작년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이고 남북 체육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단일팀 구성은 작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탄력을 받는 듯 했으나, 결과론적으로 아무것도 실행되지 못했다.
3월 26일 월드컵 축구 예선 남북 경기도 북한은 남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을 무시한 채 `평양에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북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경기가 제3국인 중국에서 진행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면 단절 속에서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이사장 김문수)과 사단법인 남북체육교류협회(상임위원장 김경성)은 남북 스포츠교류 및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선수단과 임원진 등 30여명이 지난 8월 북한을 방문했다.
남한에서는 경수유소년축구클럽이 대표로 참가하며, 북측에서는 4.25체육단 축구대표팀이 참가해 8월 8일부터 15일까지 8일간 남북 유소년 친선 축구대회 및 전지훈련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실시했다.
이에 대해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북측의 낙후된 스포츠 시설 등을 국제규격에 맞는 경기장으로 개보수 지원 및 경기장 운영과 관리에 대한 상호 정보교환, 민간단체 친선교류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순수한 스포츠 교류를 통해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 및 남북의 스포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미래 월드컵 주역인 유소년축구에 아낌없는 지원으로 한민족의 대화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 베이징올림픽과 남북교류
2008하계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에 도전하겠다던 북한은 박학선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리선호 서기장이 이끄는 북한선수단은 8월 2일 고려항공 직항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했다.
종목은 유도와 탁구, 역도, 레슬링, 복싱, 사격, 체조, 마라톤, 여자축구, 양궁, 다이빙 및 수중체조 등 11개 종목에 선수 63명과 경기․본부임원 71명 등 총 134명을 파견해 규모면에서도 임원진을 포함하면 역대 최대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선수 63명을 내보낸 북한은 여자 역도와 여자 체조에서 예상 밖 선전으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최고 성적을 거뒀다.
북한은 역대 최대 규모였던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선수 64명을 내보내 금메달 4개와 동메달 5개로 종합 16위에 오르며 일본(17위)을 앞질렀다. 이후 1996년 애틀랜타대회(금2, 은1, 동2), 2000년 시드니대회(은 3, 동1), 2004년 아테네대회(은 4, 동1)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둔 북한은 인접 우호국인 중국이 개최하는 이번 올림픽에 134명의 선수단(선수 63명, 임원 71명)을 파견하며 여자 유도 57㎏급 계순희(29)와 여자 축구를 선두로 총 10개의 메달 획득을 기대했으나, 가장 믿었던 계순희가 대회 초반인 11일 2회전에서 탈락하며 북한을 충격에 빠트렸다. 애틀랜타대회 때 84연승 중이던 일본의 간판 다니 료코를 48㎏급 결승에서 꺾는 반란을 일으키고 금메달을 딴 계순희는 시드니 52㎏급 동메달, 아테네 57㎏ 은메달까지 3회 연속 메달 행진을 벌였지만 이마저도 베이징에서 마감하며 은퇴 위기에 몰렸다.
아시아 최강을 자부한 여자 축구도 강적들이 포진한 F조에 편성된 불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이지리아에는 이겼지만 브라질과 독일에 잇따라 지며 1승2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노골드' 불안에 시달리던 북한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종목은 의외로 여자 역도였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른게 고작인 63㎏급 박현숙은 12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에서 합계 241kg을 들어 이리나 네크라소바(카자흐스탄. 합계 240kg)를 1㎏ 차이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인상에서 네크라소바보다 4㎏이나 적은 106kg에 그친 박현숙은 용상 1, 2차 시기를 실패하며 입상도 하지 못할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 시기에서 네크라소바보다 1㎏ 많은 135kg을 들어 `깜짝 우승' 주인공이 됐다.
두번째 금메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여자 기계체조 도마 종목에서 나왔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른 홍은정(19.평양시 체육단)은 17일 도마 결승에서 1,2차 평균 15.650점으로 옥사나 추소비티나(독일.15.575점)와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를 달성한 청페이(중국.15.562점)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북한의 체조 금메달은 1992년 남자 안마(배길수) 이래 두 번째다.
이 밖에도 유도 여자 52㎏급 안금애(28)가 은메달을 따내며 계순희가 조기 탈락한 충격을 달랬고, 유도 남자 66㎏급의 박철민(26)과 여자 63㎏급의 원옥임(22), 역도 여자 58㎏급의 오정애(24)가 동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북한은 사격스타 김정수(31.4.25 국방체육단)가 도핑검사에 걸려 50m 권총 은메달과 공기권총 동메달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김정수는 소변검사에서 베타 차단제의 일종인 프로프라놀롤 양성 반응이 나타났고, 본인은 호흡곤란 증세 때문에 `구심환'이라는 한약을 먹었다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한은 또다른 권총 간판 김현웅(33)이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고도 도핑 테스트에 걸려 대회에 나오지 못하는 등 도핑 스캔들 파도에 휩쓸리기도 했다.
한편 경색된 남북관계의 영향을 받은 탓에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이어진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이 무산되었다. 남북이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없게 되자 남북이 차례로 입장하는 순차입장이 한 때 기대를 모았지만 남북체제 비교를 꺼린 북측 요구에 따라 한국이 176번째, 북한은 180번째로 입장했다. 공동입장이 무산된 뒤 대회 기간 내내 남북 선수단 간에도 이전 같지 않은 냉랭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이러한 냉랭한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올림픽 등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었던 남북한의 개회식 공동입장은 당분간 파국상태로 이어질것으로 보인다.
사실 2008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 남북한 선수단은 지난 8월 1일과 2일 잇따라 베이징에 도착, 막판 컨디션 조율에 들어갔지만 공동입장을 위한 협상 방안은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말았다.
당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관계자는 "공동입장을 논의하기 위해선 양측 고위급이 일단 만나야 하는데 연락조차 잘되지 않고 있다. 실무자끼리도 제대로 접촉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당시 베이징에 있었던 박학선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공동입장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러 왔으니 그 문제는 후에 논의합시다"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또한 앞서 북한선수단 선발대로 도착했던 윤용복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은 "10.4선언이 먼저 지켜져야 한다"며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대해 KOC 관계자는 "북측에서 10.4선언이 먼저 이행돼야 한다고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니 IOC도 난감한 상태"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남북한 NOC는 지난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나 베이징올림픽에 남북단일팀을 보내자고 합의했지만 4년이 흐른 지금 단일팀 구성에 실패한 것은 물론 공동응원단도 물 건너 갔고 특별한 반전이 없는 한 공동입장마저 무산돼 남북체육교류가 10여년 전으로 크게 후퇴할 전망이다.
그동안 남북한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처음 공동입장에 합의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2007년 창춘동계아시안게임까지 9차례나 국제종합대회에서 두 손을 잡고 들어갔다. 남북한이 함께 출전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공동입장을 한 셈이다.
그러나 올 들어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면서 체육교류도 냉각되기 시작했다. KOC는 공동입장을 위한 체육회담 개최를 위해 전반기에만 수 차례 전통문을 보냈지만 북한은 접수조차 거부했다.
이러한 냉각분위기는 체육분야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제종합대회 개회식 남북 동시입장의 전통이 중단된데 이어 남측 언론을 대하는 북한선수단의 냉랭한 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동안 남북한 선수․지도자들은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면서 이념을 떠나 우정을 나눠왔고 대회기간 경기장과 선수촌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근황을 주고 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바깥에 알릴 기자들이 끼면 상황은 돌변했다.
북한 대표단 관계자들은 언론이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남측 인사들과 친한 듯한 모습을 보이길 꺼려했고, 이런 경향은 선수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한 반면 지도자들에게서는 확연히 나타나 남한 언론의 취재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기자가 북한 선수에게 접근할라 치면 어느새 코치가 다가와 선수의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으며 입상자 인터뷰에서도 코치를 의식하느라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한 뒤 남북관계가 더욱 얼어붙으면서 나타났으며 체육교류마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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