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같은 이야기

남북체육교류는 적은 비용으로 민족공감대를..

성문정 2007. 9. 13. 17:06

체육교류는 적은 비용으로 민족공감대를 이루어 낸다 (민족화해 9월호)

 

성문정(체육과학연구원)

 

분단 이후 남북이 각자의 국가 체제로 5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사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 영역에서 차별화가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남북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차별성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은 지난 1991년 12월에 이른바 ‘남북한 기본합의서’를 만들어 냈으며, 이 합의서의 제16조에는 “남과 북은 과학·기술, 교육, 문화, 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은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교류를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며, 상호 추구하는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해오고 있다.
 

남북간의 다양한 교류협력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특히 체육교류·협력에서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은 국제체육교류처럼 다양한 교류방식으로 이루어나가되, 본질적으로는 교류목표가 민족의 화해, 협력, 통일이라는 과제를 달성해가려는 노력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체육교류는 스포츠라는 국제적인 공통분모를 가지고 남북이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교류하는 것으로 정부차원의 접촉이나 경제적 동기를 주축으로 하는 교류협력의 한계를 벗어나 차별화 되어가는 남북의 현상태를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남북체육교류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오지 못했으며, 특히 남북한 주민들이 가장 손쉽게 접촉할 수 있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생활체육분야에서의 교류는 그야말로 전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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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협력의 물꼬를 터 온 체육교류
 

남북체육교류는 추진하는 수준에 따라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비용이 크게 드는 것도 아니다. 또한 분야에 따라서 북한이 쉽게 응할 여지도 많다. 지난 2002부산 아시안게임에 대규모 북한선수 및 응원단 파견과 올림픽대회에서의 남북동시입장의 사례는 남북한 체육교류의 파급력을 극명히 보여줬다. 다른 분야의 교류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감안하면 동시입장의 경우 별다른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그 어느 분야에서도 해내지 못하는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체육교류는 현 단계의 평화 정착과 화해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이목을 끌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교류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의를 바탕으로 남북간의 체육 교류가 갖는 특징 및 장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한 체육교류는 역사성을 갖는 행사로서 전통을 갖고 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이루어졌던 경평전과 같은 대회가 분단 전부터 해방 직후까지 면면히 유지되던 남북체육교류의 전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남북체육교류에 대한 민족성원들의 관심을 끌어내기가 쉽고 교류의 이념을 창출해 내기에도 용이하다.
 

둘째, 체육교류는 타 분야의 교류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대중성을 지닌다. 음악, 미술 등의 교류가 고급문화 향유자와 일반인 간의 괴리로 대중적 관심 확산이 불리한데 반해서 체육은 전문선수의 교류마저도 ‘보는 스포츠’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수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전체가 교류의 내용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남북한 체육은 타 분야에 비해 높은 동질성을 갖고 있다. 스포츠는 20세기 세계적 규격화로 남한체육과 북한체육의 이질성이 그다지 크지 않으며, 신체의 표현 형식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간의 이념이 드러날 소지가 거의 없으므로 체육교류는 다른 어떤 부문보다도 정경분리 원칙하에 교류를 용인 받을 소지가 크다.
 
이외에도 체육교류는 국제단체를 통한 중재성을 띄고 있다. 남북간 체육교류는 두 당사자 간에 진행되지만 국제체육의 현장에서 IOC, FIFA 등 국제체육단체라는 중개자가 존재한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다른 부문의 교류와 다른 틀을 갖추고 있다.
 
이상과 같은 특성으로 인해 체육교류는 다른 부문 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체육교류가 활성화된다면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민족동질성 회복에 활력을 가져오고 통일의 과정에서 민족 정서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민족화합을 이루어 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남북체육교류의 실태

남북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은 이념적인 적대 속에서도 체육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수많은 교류를 제의하고 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적잖은 인적교류를 실시해왔다.
 

1950년대 이전에도 남북은 해방이후 1945년 12월 창경원에서 열린 경평 아이스하키경기대회를 비롯하여 이듬해인 1946년 3월 제1회 종합 농구선수권대회와 경평축구대회가 잇달아 개최되어 부분적인 체육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남북은 1946년 경평전을 끝으로 각자의 체육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다가 1948년 남한에는 대한체육회와 한국올림픽위원회가, 북한에는 조선국가체육위원회와 북한올림픽위원회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고착화 정도가 심화되어 나타났다. 이후 남북체육교류는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주로 올림픽위원회가 주재하고 실무진은 양측의 종목별 경기단체의 임원이 참가하는 형태의 회담장에서 만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국제기구의 틀 안에서 시작된 남북체육회담은 최종단계에서 정치적 비방 및 이에 대한 사과 요구와 거부 등 체육 외적 변수로 인해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올림픽대회 주기인 4년마다 거의 유사한 형태로 대화 재개와 결렬이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남북체육교류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 관련 협상이 진행되던 1990년 초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1991년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치루는 성과를 거두었고, 같은 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 참가를 성사시켰으나 이후 1991년 있었던 북한유도 선수 이창수의 탈북 귀순 사건으로 상호 관계의 단절이 초래되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체육교류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합의된 이후에도 북한은 2001년부터 2002년 초까지 남북 당사자간 체육교류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2002년 가을을 기점으로 남북체육 교류는 획기적으로 변화하였다. 그 동안 남한에서 이루어지던 국제행사에는 무조건 불참하던 북한이 대규모선수단과 응원단을 이끌고 2002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에 참석하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또 다시 남한과 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흔들고 개회식과 폐회식에 참석하였다. 2005년에는 남측에서 개최한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통일축구대회에 북측 남·여 선수단이 참가하였고, 제4회 마카오동아시아 경기대회에도 남북한 공동입장이 이루어졌다.  2007년에는 남북체육교류에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3월 20일부터 4월 20일까지 한달 동안 북한의 청소년축구선수팀이 남한의 6개 지역에서 전지훈련을 한 것이다. 이처럼 남북체육교류는 50여년의 분단속에서 각종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이루어져 오고 있다.
 
 

북경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언

이러한 교류의 연속선 상에서 남북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면서도 지금껏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올림픽에서의 단일팀 출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북은 단일팀 구성을 위해 수많은 제안과 회담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여전히 독자출전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달리 오는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노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해 남북의 체육관련 수장들이 지난 2005년 9월 중국 광저우에서 만난 자리에는 IOC의 자크 로게 위원장의 지시를 받은 페레 미로 국가올림픽위원회 담당 국장까지 배석해 남북 단일팀 구성안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기까지 했다.
 

남북은 이날 2006 아시안게임과 2008 베이징올림픽에 단일팀을 파견하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나, 양측 모두 선수선발 및 선수단 구성 등 현실적인 애로가 있다는 점을 인정,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결과적으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시 실패로 나타났으며, 2008년 북경올림픽 단일팀 구성은 2007년 현재 몇 차례 협의만 진행한 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남북단일팀 구성이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북경올림픽 등 주요 국제종합대회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몇 가지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는 먼저 정부 차원의 적극 지원에 대한 의지 천명이 필요하다.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일단 북경올림픽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분위기는 남북한 당사자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동시에 합의하고 추진·지지하는 사항이기에 성사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제 1년의 기간이 남았고 올해 말까지 최소한의 시간이 남은 만큼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구체안을 도출해야 하며, 정부는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과 이후의 훈련 등에 따른 경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적극 천명하고 나서야 한다.
 

둘째, 법제화를 통한 선수권익에 대한 보호이다. 단일팀 파견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선수 선발이다. 이 문제는 남북 모두가 가장 민감한 문제이며 쉽게 풀기 어려운 숙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당국자간의 협의에서 북한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남북한이 5대 5 동수로 선수단을 구성해 종목별 예선전부터 치르자고 주장한 반면 남한은 IOC의 권고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올림픽 출전티켓을 획득한 뒤 엔트리 구성을 논의하자고 주장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회담은 장기화되고 있다.

단일팀 구성문제가 선수 개개인의 기술적 우위에 있는 남한으로서는 더욱 양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올림픽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반발은 더욱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선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 마련이 매우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가칭 ‘올림픽대회 등 남북단일팀 구성·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출전자격을 획득한 선수가 단일팀 구성으로 인해 자격을 상실할 시 동일 종목의 차기 세계대회에 참가하여 메달을 획득할 경우 올림픽대회 입상에 준하는 대우(인증서 발급, 연금 수혜 등)를 해주는 방안을 강구해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올림픽대회 단일팀 구성·지원에 관한 법제화는 통일이전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국제종합경기에의 단일팀 참가의 안정화·지속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양보와 신뢰를 통해 단일팀 구성 성사시켜야
 

이미 앞에서 제기한 것처럼 남북체육교류는 갈라진 민족이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남북한 사회통합 및 민족화해를 달성하려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민족동질성 회복과 사회·문화공동체 형성을 그 목표로 지향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남북 체육교류는 남북 상호간의 수많은 제의와 회담에도 불구하고 모두 번번이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정치적 동기를 바탕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번에 남북한의 체육단체의 장들이 IOC의 전폭적인 지지로 2008년 북경올림픽의 단일팀 구성·참가를 결정했으나 이 또한 미래 보장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이고, 국제적인 단체의 중개 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합의는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합의사항 이기에, 남북 당사자들간의 일방적인 파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만큼 시행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남한에서부터 남북단일팀 성공이란 역사적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문제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북단일팀 구성은 민족화해와 공동체형성의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자 민족의 자긍심을 키우는 기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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